직장 안에서 직업을 잃어버린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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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안에서 직업을 잃어버린다는 것

JOB일 – Story #1

명함을 받아 든 순간, 이상하게 낯선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분명 이름이 적혀 있고, 다니는 회사가 적혀 있고, 맡은 직책도 적혀 있다.

그런데 그 작은 종이 한 장을 바라보다 보면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오른다.

나는 이 회사 사람인가.

아니면 이 일을 하는 사람인가.

직장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가끔 이런 순간이 찾아온다.

회사의 이름으로 나를 설명하는 일이 익숙해질수록,

반대로 회사 이름을 지우고 난 뒤의 나는 무엇으로 설명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함께 커진다.

“어디 다니세요?”

우리는 이 질문에 너무 익숙하다.

그래서 직업을 묻는 질문에도 종종 직장으로 답한다.

“대기업 다닙니다.”

“공공기관에서 일합니다.”

“스타트업에 있어요.”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그것은 직업이라기보다 직장에 가깝다.

직장은 내가 일하는 곳이고, 직업은 내가 계속해서 해온 일에 가깝다.

직장은 소속이고, 직업은 조금 더 깊은 곳에 있는 정체성에 가깝다.

사전적으로도 직업은 개인이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일정 기간 계속해서 종사하는 일을 말한다.

반면 직장은 일정한 직업을 가지고 일하는 곳을 뜻한다.

결국 직장은 내가 머무는 장소이고, 직업은 내가 살아가는 방식에 더 가깝다.


꽤 오랫동안 내 직업은 ‘웹디자이너’였다.

지금은 조금 낯선 말이 되었다.

완전히 사라진 직업이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예전처럼 또렷한 이름으로 불리지는 않는다.

화면을 디자인하던 일은 어느 순간 UI 디자인이 되었고, 조금 더 넓게는 UX라는 이름 안으로 들어갔다.

이제는 웹디자이너보다 UI/UX 디자이너, UX 기획자, 프로덕트 디자이너 같은 말이 더 자연스럽게 쓰인다.

그런데 내 직업이 바뀐 이유는 단순히 시대가 바뀌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직장 때문이었다.

분명 내 직업은 웹디자이너였다.

하지만 직장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나는 조금씩 달라져야 했다.

처음에는 화면을 디자인했다.

그러다 기획을 함께 하게 되었고, 사용자의 흐름을 고민하게 되었고,

개발자와 이야기하는 일이 많아졌다.

프로젝트 일정과 범위를 관리하게 되었고,

어느 순간 PL이 되었고,

PM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겉으로 보면 자연스러운 성장처럼 보일 수도 있다.

실무자에서 관리자로 올라온 커리어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내 안의 감각은 조금 다르다.

한 분야의 전문성을 차곡차곡 깊게 쌓아 올렸다기보다는,

직장이라는 환경 안에서 필요한 일을 하나씩 떠안으며 여기까지 흘러온 것에 가깝다.

중소기업이었던 나의 회사에는 늘 사람이 부족했고,

역할은 명확하게 나뉘어 있지 않았고,

누군가는 빈틈을 메워야 했다.

처음에는 “이것도 할 수 있으면 좋지”라고 생각했다.

그다음에는 “이것도 내가 해야 하나?”가 되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래서 나는 지금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이지?”라는 질문 앞에 서게 되었다.

직장은 사람을 키우기도 하지만, 때로는 사람의 직업을 흐리게 만들기도 한다.

회사 안에서 필요한 사람은 대개 한 가지 일을 깊게 하는 사람이라기보다,

지금 당장 비어 있는 자리를 메울 수 있는 사람일 때가 많다.

디자인을 할 수 있으면 기획도 해보라고 한다.

기획을 할 수 있으면 일정도 보라고 한다.

개발자와 말이 통하면 개발 관리도 맡긴다.

고객과 대화가 되면 고객 대응도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그렇게 조금씩 넓어진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깊어진다는 느낌은 줄어든다.

할 수 있는 일은 많아졌는데, 나를 설명할 수 있는 말은 오히려 흐려진다.

웹디자이너였던 나는 UI 디자이너가 되었고,

UX 기획자가 되었고, PL이 되었고, PM이 되었다.

이름은 계속 바뀌었다.

역할도 넓어졌다.

책임도 커졌다.

그런데 그 과정이 온전히 내가 선택한 변화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물론 그 변화가 모두 나쁜 것은 아니다.

덕분에 나는 화면만 보는 사람이 아니라 서비스 전체의 흐름을 보게 되었다.

디자인의 언어뿐 아니라 개발의 언어, 고객의 언어, 일정과 비용의 언어를 조금씩 익혔다.

개발자로 시작하지 않았지만 개발 프로젝트를 관리할 수 있게 된 것은,

나 스스로도 자부심을 느끼는 부분이다.

다만 가끔은 생각한다.

나는 성장한 걸까.

아니면 내 직업을 조금씩 잃어버린 걸까.


우리 아이가 “아빠는 무슨 일 해?”라고 물으면,

나는 종종 대답하기전 생각에 잠긴다.

“아빠는 회사 다녀.”

가장 쉬운 답이다.

하지만 그 말은 너무 많은 것을 생략한다.

그리고 어쩌면 아무것도 설명하지 못한다.

웹디자인을 한다고 하기엔 이제 직접 디자인만 하지는 않는다.

UX 기획자라고 하기엔 프로젝트 관리 비중이 크다.

PM이라고 하기엔 내 출발점은 여전히 화면과 사용자 경험에 있다.

개발자라고 하기엔 코드를 짜는 사람은 아니다.

디자이너라고 하기엔 디자인 툴 앞에 앉아 있는 시간보다 회의와 문서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더 많다.

그래서 가끔은 그냥 회사원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 말을 하고 나면 마음 한쪽이 조금 허전하다.

회사원은 직장이 있는 사람이라는 뜻에 가깝지,

직업이 있는 사람이라는 뜻은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회사가 없어져도 나는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

명함 없이도 나를 설명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나이가 들수록 더 무겁게 다가온다.

젊을 때는 직장이 곧 나를 설명해 주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다.

어느 회사에 다니는지, 어떤 직급인지, 어떤 프로젝트를 맡고 있는지가 나를 대신 말해주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된다.

직장은 생각보다 쉽게 바뀐다.

회사는 사라질 수도 있고, 조직은 개편될 수도 있고, 내 자리는 다른 이름으로 바뀔 수도 있다.

그때 내 안에 직업이 없으면,

나는 갑자기 빈손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다.

그렇다면 직업을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아주 뛰어나게 전문성을 가져야 하는 걸까.

누가 봐도 대체하기 어려운 사람이 되어야 하는 걸까.

아니면 결국 혼자 일할 수 있어야 하는 걸까.

요즘은 그런 생각을 자주 한다.

직장 안에서 직업을 지키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

직장은 개인의 정체성보다 조직의 필요를 우선한다.

내가 무엇을 오래 하고 싶은지보다, 지금 회사에 무엇이 필요한지가 먼저다.

그래서 직장 안에서 오래 살아남다 보면 내가 하고 싶었던 일보다,

내가 할 수밖에 없었던 일들이 경력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된다.

그 결과 이력서는 풍성해진다.

하지만 정체성은 오히려 흐릿해질 수 있다.

반대로 혼자 일하는 사람은 직업이 선명해 보인다.

디자이너는 디자인으로 자신을 설명하고,

개발자는 개발로 자신을 설명하고,

작가는 글로 자신을 설명한다.

물론 그들 역시 현실에서는 영업도 해야 하고,

정산도 해야 하고, 고객 대응도 해야 한다.

혼자 일한다고 해서 순수하게 자기 직업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부러운 지점이 있다.

그들은 적어도 자기 일을 자기 이름으로 설명해야 한다.

회사의 이름 뒤에 숨을 수 없다.

명함보다 먼저 자신의 결과물과 태도가 앞에 선다.

그래서 더 불안할 수 있지만, 어쩌면 더 분명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모두가 회사를 떠나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모두가 프리랜서가 되거나 1인 기업이 되어야 한다는 말도 아니다.

다만 직장 안에 있더라도,

내 직업을 완전히 직장에 맡겨버려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회사가 내 역할을 정해줄 수는 있다.

하지만 내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는 결국 내가 정리해야 한다.

회사에서는 PM이라고 불릴 수 있다.

어느 프로젝트에서는 기획자일 수 있다.

어떤 자리에서는 관리자일 수 있다.

또 어떤 순간에는 고객의 말을 개발자의 언어로 바꾸는 통역자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모든 역할을 관통하는 나만의 문장을 가져야 한다.

나에게 그 문장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다만 조금씩 가까워지고는 있다.

나는 사용자가 마주하는 경험을 구조화하는 사람이다.

복잡한 요구사항을 화면과 기능과 일정으로 바꾸는 사람이다.

사람과 시스템 사이의 간격을 줄이는 사람이다.

이 문장들이 완벽하게 맞는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몇 년 뒤에는 또 다르게 말하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직장 밖에서도 나를 설명할 수 있는 언어를 계속 찾아가는 일이다.

직업은 한 번 정하면 평생 변하지 않는 이름이 아닐지도 모른다.

오히려 직업은 계속 바뀌는 직장 환경 속에서도 내가 놓치지 않으려는 일의 중심에 가깝다.

직장이 나를 이리저리 옮겨놓아도, 내가 계속 붙잡고 있는 관심과 태도.

그것이 어쩌면 직업의 더 정확한 얼굴일지도 모른다.

직장은 나에게 자리를 준다.

하지만 직업은 나에게 방향을 준다.

직장은 나를 조직 안에 앉힌다.

하지만 직업은 내가 왜 그 자리에 앉아 있는지를 설명해 준다.


다시 명함을 바라본다.

그 안에는 회사 이름이 있고, 부서가 있고, 직책이 있고, 연락처가 있다.

분명 필요한 정보들이다.

그러나 그것이 나의 전부는 아니다.

명함은 현재의 소속을 보여주지만, 내가 지나온 시간과 앞으로 만들어갈 일을 모두 담지는 못한다.

언젠가는 명함 없이도 말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나는 이런 일을 해온 사람이라고.

나는 이런 문제를 풀어온 사람이라고.

나는 이런 방식으로 먹고살아온 사람이라고.

직업을 갖는다는 것은 어쩌면 그런 일인지도 모른다.

회사 이름 뒤에 숨지 않고, 직책 하나에 기대지 않고,

직장이 바꿔놓은 역할들 사이에서도 내가 오래 붙잡아온 일의 방향을 스스로 설명할 수 있게 되는 것.

먹고사는 일은 결국 생계의 문제다.

하지만 오래 먹고살기 위해서는 정체성의 문제이기도 하다.

나는 여전히 직업과 직장 사이에 서 있다.

직장이 내 직업을 바꿔놓았고, 나는 그 변화를 받아들이며 여기까지 왔다.

어떤 날은 그것이 성장처럼 느껴지고, 어떤 날은 내가 원래 가지고 있던 직업을 잃어버린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도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직업은 명함에 적힌 이름이 아니라,

직장이 바뀌어도 끝내 남아 있는 나의 일하는 감각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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